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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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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9] Day 7, 타파스의 천국, 로그로뇨에 도착하다! 쿠바 리브레가 선물해 준 꿀잠 덕에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까미노 초반에 선보였던 미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아침 잠이 많은 J씨를 제외하고, 우리 다섯 명은 오늘도 힘차게 길 위에 올랐다. 통증, 더위, 오르막길과의 사투를 벌이다 바위를 의자삼아 20분 가까이 쉬었다. 그러던 중, 언제 출발한 건지, J씨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는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대단해' 걷기 시작할 때 아파오던 발의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었다.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걸었다. "아, 좋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나는 무한 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잠시나마, 혼..
[2016/06/08] Day 6,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작은 마을, 토레스 델 리오! 다들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잠이 들었던 어제, 나는 잠이 안와 한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 P씨도 있었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잤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가 정신없이 자신의 베드로 올라가는 중에 2유로짜리 동전을 떨어뜨려 아침에 전해주었더니 민망하게 웃는다. 언젠가부터 P씨가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말자.' 분주하게 준비한 후, 식당에 내려와 어제 사둔 요거트, 토스트, 과일을 먹었다. J씨는 천천히 일어나겠다고 하여, 그의 베드 한쪽에 간식을 두었다. 5명이서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로비에 모였다. L씨는 나를 리더로..
[2016/06/07] Day 5,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로! 어젯밤엔 꽤 숙면을 취한 것 같다. 5시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드디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눈을 반쯤 감고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채비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1. 침낭 돌돌 말아 배낭에 넣기 2. 세수, 양치, 순례복으로 갈아입기 3. 작은 가방1(세면도구), 2(의류) 넣기 4. 판초 우의 얹기 5. 빠뜨린 물건 없는지 확인하기(빨래, 스틱) 우리 5명의 멤버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부지런한 L씨가 후랑크소시지를 굽고, 초코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커다란 그릇에 담아 올렸다. 나는 오렌지를 깎아 접시에 담았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고선,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텔라(Estella)의 공립 알베르게(Municipal)가 붐빈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식사..
[2016/06/06] Day 4, 곡소리 가득한 푸엔테 라 레이나 가는 길! 어젯밤, 두 동행님들의 지독한 과음으로 걱정에 잠을 못 이룬 나는, 2시간의 짧은 수면 후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P씨는 팜플로나에서 대학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가야한다며 다음 마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팜플로나가 큰 도시여서 그런지, 이 곳에서 2박 이상 묵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보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순례자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다. 수면시간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멋지게 걸었다. 걷는 속도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처음에 가졌던 마음인, '무조건 빨리, 빨리!'보다는 이제는 동행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져, 뒤쳐진 동행들을 기다려 가며 여유롭게 걸었다. 바로, 이 곳을 넘는 모든 이가 용서하지 못 한다는 용서의 언덕! 그 가파르고도 뜨거운 언덕을, 나는 이를 악물고선 뒤도 돌아..
[2016/06/05] Day 3, 주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나 우리 셋은 순례를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였다. 작은 알베르게라 그런지, 욕실, 세면대, 로비 등 어느 곳을 가나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침으로 간단히 토스트를 먹고, 오늘은 Y씨와 나 단 둘이 아닌, 셋이서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Y씨와 나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1. 다정한 한국인 커플 (X) 2. 걸음이 엄청나게 빠른 순례자들 (O) 3. 운동 선수들 (X) 무성한 소문과 함께 순례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우리라, L씨가 함께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셋이서 나름 호흡을 맞춰가며 수월하게 걸었다. 한참 걷던 중에, 우리 일행은 한 성당 앞에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새벽에 배낭을 꾸리다 만났던 한국인 남성 2명 중, 한 명(P씨)과..
[2016/06/04] Day 2, 주비리에서 동행을 얻다 둘째날이 밝았다. 5시에 일어나자고 했었는데, 나는 밤새 뒤척이다 결국 4시 반에 깼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자다보니,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다. 생장에서도, 론세스바예스에서도 충분히 자지 못했는데도, 그나마 긴장을 해서 그런지 피곤함을 잊었다. 순례길의 모든 숙소는 혼성 믹스돔이기 때문에 내가 잠귀가 밝든, 예민하든, 모든 것은 사치! 얼른 이 숙소 문화(?)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상쾌하게 씻고 빨래를 걷으러 건조대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는데 이.럴.수.가! 바삭바삭 말라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옷가지에 밤새 내린 비 + 아침 이슬이 축축하게 내려앉은 것이다. 순례길을 준비할 때, 순례자들이 마르지 않은 빨래를 배낭에 주렁주렁 매단 채로 걷는 사진을 보았는데 그것이 나에게 현실이 되었다..
[2016/06/03] Day 1,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늘의 까미노 : 생장(Saint-Jean-Pied-de-Port)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25.6km) 5시쯤 일어나 Y씨는 먼저 씻고, 나는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제 씻고 잔 터라 간단히 세수, 양치만 하고 나설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로 토스트, 요거트, 바나나를 먹고 길을 나섰다. 일단 순례길 루트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디로 가야할지 30분 가까이 헤매다가 구글맵을 믿어보기로 하고,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힘차게 움직였다. 초반에는 순례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다가 갈수록 많아졌다. 무릎 잡고 걷는 여자, 이어폰을 꽂고 인사도 없이 묵묵히 걷는 남자, 스틱 없이도 참 씩씩하게 걷는 여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이 모든게 너무 좋았다. 어떻게 이 곳에는 인종..
[2016/06/02] 순례 D-1, 생장으로 이동하다 4시 40분 경 알람 소리에 깨어 눈꼽도 떼지 않은 채, 숙소 로비로 나오니 순례예정자 두 분이 준비하고 계셨다. 한 분은 순례길 중, 프랑스길 유경험자로, 이번엔 다른 길을 걸으신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오! 어제 밤에 체크인 한, 나보다 세 살 어린 프랑스길 순례 예정자(Y씨)란다. 우리는 망설임없이 동행이 되었다. Y씨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더니, 거긴 어디냐며, 본인은 거긴 가본 적도 없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여행을 하다 온 거란다. 어제 숙소에 묵으신 아주머니 순례객께서 '부다페스트'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으신 거다. 내심, '남자분과 내가 체력이 맞을까?' '생장까지만 함께 이동하고, 순례길을 걸을 때는 각자의 속도에 맞게 걷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