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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06] Day 4, 곡소리 가득한 푸엔테 라 레이나 가는 길!

어젯밤, 두 동행님들의

지독한 과음으로

걱정에 잠을 못 이룬 나는,

2시간의 짧은 수면 후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P씨는 팜플로나에서

대학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가야한다며

다음 마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팜플로나가 큰 도시여서 그런지,

이 곳에서 2박 이상 묵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보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순례자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다.

 

수면시간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멋지게 걸었다.

 

 

 

걷는 속도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처음에 가졌던 마음인,

'무조건 빨리, 빨리!'보다는

이제는 동행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져,

뒤쳐진 동행들을 기다려 가며

여유롭게 걸었다. 

 

바로, 이 곳을 넘는 모든 이가

용서하지 못 한다는 용서의 언덕!

그 가파르고도 뜨거운 언덕을,

나는 이를 악물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차게 올랐다.

올랐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을 잘 알기에...

 

 

 

 

용서의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아, 너무너무 기분 좋다. 멋지게 해냈어."

바람이 참으로 달콤했다.

 

오후쯤 비소식이 있어,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1.5km를 앞두고

L씨를 제외한 우리 셋은,

완전히 지쳐서, 억지로 억지로 걸었다.

 

"엉엉, 가도 가도 끝이 없구나."

 

도착하자마자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쪼리로 갈아신었다.

 

 

드.디.어.

끄덕없을 것만 같던 나의 발에도,

물집이라는,

아주 맑지만 지독한 쓰라림을 주는

'악당' 녀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짐만 풀고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우리 넷은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 갔다.

 

 

 

아쉽게도 전부 냉동 음식이었다.

그래도 뭐, 먹을 만하였다^^;

 

숙소에 와서 일행들은 낮잠을 잔다고 하였다.

나는 피곤하긴 했으나

낮잠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아

배터리 충전기를 챙겨 아래로 내려왔다.

 

주방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에 괜히 정신이 사나워져

사람들의 이동이 적은,

리셉션 옆 복도에 충전기를 꽂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써 내려갔다.

 

한국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온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심난했다.

 

그때, Y씨가 나를 발견하고는,

"궁상 떨지 말라"며 일으켜 세웠다.

"잠도 안오고, 그냥 좀 심난하다"고 했더니

Y씨는 마을을 천천히 걷기를 제안했다.

 

우리는 걸으며 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에 비해 참 성숙하고 배울점이 많은 L씨.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을,

내심, 마음까지 어리다고 생각했었나보다.

 

L씨는 그런 나의 편견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숙소 앞을 지날 때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 보니,

맙소사! P씨였다.

 

너무나 놀라웠고,

반가움과 의외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나는 어쩌면,

P씨가 꼭 이곳까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P씨는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물었고,

마트에서 장을 간단히 봐왔다고 하니,

본인이 파스타를 해주겠다며

다시 마트에 갈 것을 제안했다.

우리 셋은 신나게

파스타, 샐러드 재료를 사왔다.

 

셰프 P씨, 싹싹한 보조 Y씨를 필두로

쿠킹 타임이 시작되었다.

 

 

L씨, B씨,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완성된 요리에 내내 감탄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살이 찌기 시작한 게...하아)

 

P씨는 어찌나 요리를 능숙하게 잘 하던지,

같은 나이인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하며 살아온거지?ㅋㅋㅋ

 

우리는 나름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저녁, 그리고 간단한 맥주 타임을 가졌다.

 

그러다 시간이 꽤 늦어,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

조용히 숙소에서 나와

숙소 바로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자리를 이어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마냥 즐거운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무심히, 빠르게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