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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07] Day 5,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로!

어젯밤엔 꽤 숙면을 취한 것 같다.

5시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드디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눈을 반쯤 감고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채비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1. 침낭 돌돌 말아 배낭에 넣기

2. 세수, 양치, 순례복으로 갈아입기

3. 작은 가방1(세면도구), 2(의류) 넣기

4. 판초 우의 얹기

5. 빠뜨린 물건 없는지 확인하기(빨래, 스틱)

 

우리 5명의 멤버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부지런한 L씨가 후랑크소시지를 굽고,

초코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커다란 그릇에 담아 올렸다.

나는 오렌지를 깎아 접시에 담았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고선,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텔라(Estella)의

공립 알베르게(Municipal)가 붐빈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식사 자리에는 있었지만,

오렌지 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선,

오늘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겠다는

P씨를 격려해주었다.


어제 잠을 잘 잤는데도 뭔가 피곤했다.

까미노에 조금은 적응이 된건지

마음이 살짝 나태해진 것 같아,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이 곳에 온 목적을 생각하자.

 

'나는 여기에 휴식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나약함을 버리고,

강인함을 키우기 위해 왔다.'

 

나는 힘든 걸 즐기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힘듦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뒤의

짜릿한 희열을 즐긴다.

 

힘들 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극복하고 난 뒤에는

더욱 강해짐을 느낀다.

 

 

오늘의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

그리고 불타는 태양 아래의 평지였다.

 

우리 넷은 따로 걷다가도

서로를 기다려가며 휴식을 취했다.

쉬는 중간 중간, 과일, 음료를 섭취하며

허기질 틈이 없도록 했다.

 

너무 덥고 숨이 찼지만,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힘을 내서 걸었다.

 

 

에스텔라까지 5km정도를 앞둔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쉬어가기로 했는데,

그때 갑작스런 P씨의 등장으로 깜짝 놀랐다.

 

오늘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고,

자신을 나태하게 보는 듯한 시선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모두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까미노 위에서 성숙해가나보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종적으로

5명이서 에스텔라에 도착했다.

 

마트에서 장을 본 다음,

여행과 순례를 하면서

의도치 않게 기부한 게 너무 많았던

B씨와 나는 스포츠매장 데카트론(Decathlon)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샀다.

 

매우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L씨와 P씨가 점심 겸 저녁을 해준다며

주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부지런히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맛을 떠나서,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만 싶을 때

묵묵히 발휘한,

그들의 정성과 희생(?)이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순례길에서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심지어는 처음 본 사람에게도

아무 망설임없이 선뜻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 되었든, 정신적인 것이 되었든)

자신의 것을 내어주곤 한다.

 

순례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느낀다.

 

 

오늘은 특별하게 6명이 함께 했다.

팜플로나에서 잠시나마

우리의 술자리에 합류했던,

내가 신부님으로 오해하였던 순례자(J씨)다.

 

그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신앙심이 깊은 청년이다.

캐나다에서 일정 기간 합숙하며

종교 활동을 하다 까미노에 올랐다고 한다.

 

 

빠에야와 돼지고기는

진짜 너무나 맛있었고,

다시 한번 L씨, P씨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어서 순례길에서 빠질 수 없는,

흥겨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가볍게 한 잔씩 한 후,

더 늦기전에 심카드를 사야한다는 B씨와 함께

둘이서 Vodafone에 다녀 왔다.

스페인의 다른 곳보다 조금 비쌌다.

Y씨와 함께

팜플로나에서 산 심카드가 더 저렴!

 

심카드를 사고 돌아오니

술자리가 애매하게 끝나있어

일찍 쉴 겸,

침대가 있는 2층으로 올라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Y씨가 올라와서는 술자리에 함께 하잔다.

 

알베르게 앞에 순례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우리는 땅바닥에 앉아

각자 마실 것을 술잔에 담아

파티에 합류했다.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나는 특히 P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같은 나이임에도,

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해온

P씨게도 아픔이 있다는 것.

그가 하는 말과 행동들은 매우 활기차고

사교성이 흘러넘쳤지만

그의 표정에서 고독과 슬픔이 비쳤다.

 

앞으로 순례를 함께 하면서

(얼마나 함께 할지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 싶다.

 

11시를 앞두고,

숙소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자러 들어왔다.

 

괜시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