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09] Day 7, 타파스의 천국, 로그로뇨에 도착하다!

쿠바 리브레가 선물해 준 꿀잠 덕에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까미노 초반에 선보였던

미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아침 잠이 많은 J씨를 제외하고,

우리 다섯 명은 오늘도

힘차게 길 위에 올랐다.

 

 

 

통증, 더위, 오르막길과의 사투를 벌이다

바위를 의자삼아 20분 가까이 쉬었다.

그러던 중, 언제 출발한 건지,

J씨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는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대단해'

 

걷기 시작할 때 아파오던 발의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었다.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걸었다.

 

"아, 좋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나는 무한 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잠시나마, 혼자만의 까미노를 즐겼다.

 

 

저 앞에, 긴 다리에 타이트한 농구복을 입은

J씨가 보였다.

 

그는 빠르게 걸으면서도

여유롭게 풍경 사진을 찍고,

성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도장도 받고,

기도도 하고 나오는 것 같았다.

속으로, 그에게 무한의 존경심을 표하며

나는 다시 속력을 냈다.

 

얼마쯤 왔을까...

목이 몹시 말랐던 나는

많은 순례자들이 휴식하고 있는 넓은 터에 앉아

배낭, 신발,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는,

꿀꺽꿀꺽 물 500mL를 단숨에 마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인자한 미소를 띄운 J씨,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환상의 콤비력을 뽐내는 P씨와 Y씨,

지친 기색이 역력한 L씨, 느리지만 꿋꿋한 B씨까지 모두 모였다.

 

L씨는 내게 언제 따라 잡힐지 모르니

별로 쉬지도 않고는,

먼저 가겠다며 출발했다.

 

한참 걷다가,

뒤늦게 출발한 내가

무서운 속도로 그를 뒤따라 온 것을 발견하고는

내게 미쳤다며 혀를 내두른다.

 

 

어느새 나란히 걷게 된 L씨, J씨, 그리고 나는

발을 맞춰가며 즐겁게 걸었다.

 

L씨와 나는 어느새 톰과 제리처럼

서로를 놀리는 재미에 맛 들렸다.

 

그때, 돌연 사진작가 본능이 발동한 그는

다큐 3일을 찍는다며,

나와 J씨에게 휴대폰을 들이민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순례길에 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웃겨 죽겠는데,

J씨는 이미 다큐 찍은 지 3일 째라도 된 듯,

능숙하게 인터뷰에 응한다.

 

드디어 로그로뇨(Logrono)에 도착했다.

오, 엄청나게 큰 도시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다.

닌 어딜 돌아다닐, 아니,

말할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아

 

그 자리에서 완전히 몸을 늘어뜨리고는

체크인 시간만을 기다렸다.

 

나의 모습이 딱했는지 P씨는

자신의 간식을 나누어주며 힘을 주려 한다.

덕분에 금세 살아났다.

 

 

 

체크인 후, 말끔히 씻은 뒤

우리는 알베르게 근처에 열린 장터에서

삽겹살 샌드위치와 와인으로 요기를 채웠다.

 

 

 

신나게 로그로뇨의 거리를 누볐다.

이곳이 바로 타파스의 천국이다!

조금은 비싼 가격이지만,

우리 여섯 명은 둘 씩 나뉘어

각자 먹고 싶은 타파스와 맥주를 즐겼다.

 

 

 

시에스타라 하나 둘씩 가게가 휴식시간을 갖는다.

흥이 가시지 않은 P씨와 Y씨는 더 놀고 마시겠단다.

 

우리 넷은 숙소에 돌아와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을 불태우기 위해 휴식을 택한 나,

콘센트를 찾아 헤매다 식당에서 휴대폰을 충전하며 일기를 쓰는 B씨,

많이 피곤했는지 신나게 코를 골며 자는 J씨,

숙소에 있는가 싶더니, 중국인 마트를 찾아 나선 L씨.

 

각자의 개성은 뚜렷하면서도,

어느 하나 제 멋대로 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일행들이 너무 좋다.

 

길었던 시에스타가 막을 내리고,

로그로뇨에 광란의 밤이 찾아왔다.

 

J씨, L씨는 중국 뷔페 웍 투 웍(Wok to Walk)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고,

나머지 넷은 한적한 술집을 찾아 들어가

꽤 긴 시간 동안

타파스와 함께 맥주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P씨와 Y씨가 나와 B씨에게

돼지 귀를 요리한 타파스를 권한다.

 

‘웩...’

 

나와는 맞지 않는 걸로^^

세상에 참 특이한 음식 많다.

 

숙소로 돌아와서,

각자 망가진 발을 치료했다.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다.

 

겁을 잔뜩 먹은 B씨는,

Y씨의 도움으로 물집을 터뜨렸다.

내색은 안 해도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P씨 덕에 치료는 물론,

발 마사지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그는,

응급구조자격증? 비스무리한 걸

가지고 있단다.

 

'하... 넌 못하는 게 뭐니?'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하다가

하나 둘, 자러 들어간다.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본 순간,

‘코...피?’

코피를 별로 흘려본 일이 없는 나는,

고장난 수도꼭지 마냥

줄줄 흐르는 피를 보고는

너무너무 당황했다.

 

코를 붙잡고선,

다급하게 일행들에게 가니,

P씨만이 깨어 있다.

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코피가 멎었다.

확실히 무리하긴 했나보다.

 

밖에서는 여전히

광란의 밤이 이어졌다.

곧 해가 뜰 것 같은 시간인데도

밖의 소음은 여전해,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알베르게 내,

순례자들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