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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11] Day 9, 흥부자 삼인방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산토도밍고!

아침 식사로 각종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

하루에 하나 이상 꼭 먹는 빵!

빵이라면 이제 질리지만서도,

어느 바에서나, 마트에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게 빵이기에,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든든하게 먹어두었다.

 

L씨는 오늘 점프를 하겠단다.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출발하였다.

Y씨는 발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며

P씨와 나에게 먼저 가란다.

그를 격려해주고서,

P씨와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눠가며 함께 걸었다.

 

어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에

그 이후로는 그를 쳐다보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왠지 어색했다.

 

저..정신 차려야 되는데...


며칠 전부터

등산화가 왼쪽 엄지발가락을 계속 자극해왔다.

분명히 10mm정도 큰 것으로 사서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꾸준히 연습했는데

발가락 양말, 등산 양말을 겹쳐 신은데다가

발이 부어 올라 꽉 조이게 됐다.

결국 이 현상이 지속되어

 물집이 제대로 잡혀 걷기가 힘들었다.

 

까미노 의사선생님 P씨는,

이를 눈치채고는 잠시 쉬어가잔다.

내가 넉다운 되어 쉬는 동안,

P씨는 나의 등산화를 늘려주고,

한참 마사지를 해주고는,

대뜸 배낭을 들어주겠단다.

지난 번에 Y씨에게 신세졌던 기억이 있는데,

P씨한테까지...?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ㅠ^ㅠ

 

쉬는 사이 느릿느릿 이곳까지 걸어온 Y씨와 함께

다시 한번 힘을 내어 걷기 시작한다.

P씨의 도움 덕에, 훨씬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어느새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다다랐다.

일찌감치 도착해 여유를 즐기고 있던

L씨를 알베르게 앞에서 만났다.

점프한 것이 허무하지만,

그래도 쉬니까 너무 좋단다.

 

체크인 시간 전이라,

지친 우리는 알베르게 옆에 줄지어 앉아 기다렸다.

체크인 후, 숙소에 배낭을 놓고는 마트에 가잔다.

Y씨와 나는 너무 힘들어서

숙소에서 천천히 씻기로 하고,

그동안 P씨와 L씨는

마트에서 장을 봐 오기로 한다.

 

그러나 알베르게 내 주방이 열악해서

사 먹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그들을 만나러 나갔다.

 

시에스타라 많은 레스토랑이 쉬고 있는 데다가

패스트푸드점 외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우연히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웨이터는 너무 바쁜지 주문을 받을 생각이 없고,

주문을 겨우 하고 나서도 한참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지친 데다가 배까지 고파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기다렸고,

결국, L씨와 Y씨는 참지 못해 햄버거를 사먹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치 떡볶이처럼 생긴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치킨 빠에야, 튜나 샐러드 등이 나왔다.

맛을 보고 나니,

모든 불만이 쏙 들어갔다.

'이래서 오래 걸린 건가'

 

마트에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과일, 달걀, 네스퀵 요플레 등을 사서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알베르게 정원으로 나왔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공간에서 음식을 해 먹고,

수다도 떨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그때,

누군가가 기타연주를 한다.

그 소리를 듣고, P씨는 그들에게 다가가

기타를 빌려 들고서는

멋드러지게 팝송을 연주하며 부른다.

 

여성 순례자들의 눈이

하트로 변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참,

우리 일행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좋아한단 거였다.

우리는 P씨의 기타 연주에 맞추어

한참동안 함께 노래를 불렀다.

순례자들의 박수와 환호를 듣는데 희열이 빡!!!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한바탕 노래를 부른 뒤,

돌연 ,일행들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한다.

 

발 상태가 너무 심각해,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단다.

그들은 이만큼 걸었으면 됐다,

이제 즐기고 싶다,

이비자로 떠나겠다는 등,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들을

진지하게도 한다.

 

가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냉정한 표정으로

이 상태로 걷는 건 무리란다.

 

하... 갑자기 술이 술술 들어간다.

 

나는 너무 슬펐다.

그들과 정이 많이 들었고,

아직 혼자 걸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는지,

혼자가 된다는 게 너무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맥주 캔을 연거푸 들이키다

정신이 어질어질해져

저녁 8시에 누워버렸다.

 

내일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