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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05] Day 3, 주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나

우리 셋은 순례를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였다.

작은 알베르게라 그런지,

욕실, 세면대, 로비 등 어느 곳을 가나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침으로 간단히 토스트를 먹고,

오늘은 Y씨와 나 단 둘이 아닌,

셋이서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Y씨와 나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1. 다정한 한국인 커플 (X)

2. 걸음이 엄청나게 빠른 순례자들 (O)

3. 운동 선수들 (X)

 

무성한 소문과 함께

순례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우리라,

L씨가 함께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셋이서 나름 호흡을 맞춰가며

수월하게 걸었다.

 

 

한참 걷던 중에, 우리 일행은 한 성당 앞에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새벽에 배낭을 꾸리다 만났던

한국인 남성 2명 중, 한 명(P씨)과 조우했다.

 

'왜 혼자일까?'

 

그는 다리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였고,

머리 위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와 함께 우리도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P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어학연수를 다녀왔거나

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였다.

 

그가 동갑이란 사실에 급! 친근감이 들어,

함께 동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얼른 목표지점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므로

그에게 격려를 남긴 뒤,

다시 파워워킹을 시작했다.

 

부쩍 친해진 우리 셋은,

각자의 휴대폰에 있는 노래를 틀어,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걸었다.

 

우리는 스틱을 참 다양하게도 활용했다.

 

때로는 리듬을 타는 용도로,

때로는 마이크로,

그러다 오르막을 만나면, 본연의 지팡이로.

 

그렇게 흥과 끼를 발산하며 걷던 끝에,

팜플로나(Pamplona)에 도착하였다.

큰 도시답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하였기에,

배낭을 벗어 던지고

알베르게 앞에 철푸덕 앉아 기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알베르게의 문이 열렸다.

한참 줄서서 기다리는데, P씨가 나타났다!

 

체크인을 마치고는

L씨의 열렬한 '버거킹' 타령에,

P씨까지 넷이서 버거킹으로 향했다.

나는 식욕이 부쩍 줄어,

버거를 반쯤 먹고선 포장하였다.
식사 후, 중국인 마트에서

저녁, 내일 아침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스페인의 휴식 타임인

시에스타를 즐겨볼까 했는데,

P씨는 팜플로나는 큰 도시니까

한번 둘러보고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고,

휴식을 택한 Y씨를 제외한 우리 셋,

그리고 갑작스레 숙소에서 만나

합류하게 된 한국인 여자분(B씨)까지,

모두 네 명이서 시내를 거닐며

오후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사진 찍기를 굉장히 좋아하며,

이쪽 분야로의 취업을 꿈꾼다는 L씨는

엄청난 사진작가 포스를 풍기며

우리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대..대다나다!

 

 

B씨는 같은 여자라 그런지 금세 친해져,

만난지 단 몇분 만에 팔짱을 끼고 걸었고,

잠깐 사이에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였다.

나이대는 조금 다르지만, 고민은 비슷했다.

 

 

날씨가 넘나 더워서

만장일치로 젤라또를 사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P씨는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런 슬픈 경우가...

결국 그는 셔벗 종류를,

우리 셋은 달다구리한 젤라또를 먹었다.

 

 

 

저녁 메뉴는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에게 기침을 유발했다.

죄송합니다.

과자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이때 수염을 수북하게 기른

한국인 남자분이 오셔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톨릭 신자 이상의 포스를 풍겼다.

우리는 그를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30대 정도의 신부님이라고 추측하였는데,

알고 보니 단지 신앙심이 깊을 뿐인,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하

기회가 되면 또 보기로 하고선

그는 쿨하게 다른 술자리로 합류하였다.

 

또한 단순히 영어를 매우 잘 하는

한국인인줄 알았던 동갑내기 P씨가

캐나다 사람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왠지 모를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기는 그에게,

나는 충동적으로(?) 친해지자는 말을 남겼다.

그가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여서,

곧 홀연히, 미련없이

우리 그룹을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술을 잘 못하는 나지만

그 자리가 마냥 즐거웠고,

순례자의 밤의 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