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03] Day 1,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늘의 까미노 : 생장(Saint-Jean-Pied-de-Port)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25.6km)


5시쯤 일어나 Y씨는 먼저 씻고,

나는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제 씻고 잔 터라 간단히 세수, 양치만 하고 나설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로 토스트, 요거트, 바나나를 먹고 길을 나섰다.

 

 

일단 순례길 루트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디로 가야할지 30분 가까이 헤매다가

구글맵을 믿어보기로 하고,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힘차게 움직였다.

 

 

초반에는 순례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다가 갈수록 많아졌다.

무릎 잡고 걷는 여자,

이어폰을 꽂고 인사도 없이 묵묵히 걷는 남자,

스틱 없이도 참 씩씩하게 걷는 여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이 모든게 너무 좋았다.

어떻게 이 곳에는 인종차별이 없는거지?

 

내가 스무살 때,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났더랬다.

체코의 아름다움에 감탄함도 잠시,

현지인인지 외국인인지 모를 어떤 남자가

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조롱하듯 욕설을 내뱉고 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순례길에서는 인종이고 뭐고,

젊건, 나이가 들었건,

사회에서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을 하든,

모두가 같은 순례자 신분일 뿐이다.

너무나 감사하고도 행복하다.

 

7km쯤 걸었을까,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던 길의 중간에

Orisson이라는 레스토랑 겸 알베르게가 있었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까미노에 오른 사촌 동생은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우리는 간단히 목만 축이고,

활력을 얻어 다시 힘차게 나아갔다.

 

 

 

오늘 걷는 길이 피레네 산맥을 넘는 구간이라

험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덕에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허나, 힘든 길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으면, 산 넘어 산이었다.

그러다 대피소를 지나, 우뚝 솟은 언덕을 발견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1470m 정상인 것이다!

 

 

우리는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외국인 순례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나의 좌측에 있는 남자는,

내가 손등을 보이며 브이 포즈를 취하자, 사진 촬영은 안중에도 없는지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

손등을 보이는 브이 표시는 굉장히 심한 욕이라고.

한국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하는데... 넘나 충격적인 것.

 

흥이 넘치는 남자부터, 담배를 태우는 유쾌한 여자 순례자 등

다들 원래부터 알아온 사이처럼 친근하고, 유쾌했다.

 

휴식 후에는 내리막길이 우리를 맞이했는데, 오 마이 갓!

사실 이제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었는데

내리막길이 나를 몹시 힘들게 하였다.

 

 

가파른 경사에 보폭을 좁혀 천천히 한참을 내려오다보니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다다랐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반!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있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빨리 도착한 편이었다.

 

나는 201, Y씨는 202번 베드를 배정받고

배낭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아주 상쾌하면서도 너무 피곤했다.

 

우리는 저녁 7시에 순례자 메뉴를 먹기로 했기에

몰려오는 졸음을 꾹 참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식당 자판기에서 요기를 채울 만한 리조또, 파스타 한개씩을 사서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아놔 먹는 것마다 실패라니!

 

곧 순례자 메뉴를 먹으러 가까운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한국인을 몇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식당에 도착한 순서대로 안쪽 테이블부터 채워 앉았는데,

호주 할아버지, 프랑스 할머니 2명 등이 함께 했다.

 

당신은 한쪽 귀가 어두우니 제발 크게 말해달라시던 호주 할아버지,

완전 마르셨는데 음식을 초스피드로 드시고선 다음 메뉴를 기다리시던 프랑스 할머니1,

생선 비늘을 죄다 벗겨 내고 드시던 프랑스 할머니2,

모두가 오늘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다.

 

애피타이저로 파스타를 먹고, 메인요리로 치킨스테이크를 먹었다.

사실, 애피타이저가 메인인줄 알고 잠시 실망했으나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캬캬

 

 

 

후식으로 나온 요플레까지 맛있게 먹고,

간단히 술을 마시려고 이곳저곳 둘러봤으나 이 마을은 넘나 작았다.

 

다음을 기약하고 숙소에 들어와

Y씨와 나는 베드에 걸터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Y씨는 알던 대로 정말 경험도 많고, 사연도 많지만,

속이 참 깊은, 특이한 동생이었다.

 

단 하루를 함께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어느새 속 얘기를 털어놓는 절친이 되어 있었다.

아마 아주 힘든 순간을 의지하며 함께 이겨냈기 때문이겠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을 위해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