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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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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8] Day 16, 푸른 정원이 딸린 알베르게가 있는, 테라디요스!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어제 사둔 바나나와 요거트로 요기를 채운 뒤 나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다음 마을까지 17km라 한다. 이 말은, 이곳을 출발하여 17km를 갈 동안 사먹을 데가 없을 거라는 것. 우리는 근처 빵집에 들러 바게트빵과 피자빵을 사서 출발했다. 자욱하게 낀 안개는 우리가 걸어갈 길에 엄청난 신비감을 조성해주었다. 가시거리가 짧아, 앞뒤로 누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는 손을 꼬옥 잡고 힘차게 걸었다. 한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길... 하지만, 자스민 꽃향기에 취해, 서로에 취해 지루한지 모르고 걸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 위에 가득했던 먹구름이 한겹 걷힌 듯 했다. (이때 ..
[2016/06/16] Day 14, 걸어요, 둘이서♪ 보아디야까지! 작은 마을 혼타나스에도 상쾌한 아침이 찾아왔다. 잠을 푹 잔 건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아주 좋았다. 어젯밤 빨아놓은 빨래를 잠들기 전에 걷어왔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잠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역시나 빨래는 아침 이슬을 담뿍 받고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다. 곤히 자는 순례자들을 깨울 수 없어, 우리는 미처 다 싸지 못한 배낭을 들고 빛을 찾아 식당으로 향한다. 배낭을 꾸리다, 문득 배낭 무게를 더 줄이고 싶어졌다. 여행 때부터 거의 사용한 적 없는 셀카봉, 공병 등을 과감히 버리려 하자, P씨가 버릴 거면 자길 달란다. '안 그래도 배낭 무거우신 분께서 짐을 덜지는 못할 망정...'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단 걷기 시작해서 바나 레스토랑이 있는 마을에 멈추어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알베르게를 나선다. 그..
[2016/06/13] Day 11, 순례자들의 웃음꽃이 가득 핀 아헤스 가는 길! 벨로라도에서 맞는 아침. (적당히 마시는) 술이 발휘하는 마력은 대단하다. 예민예민한 내가 모처럼만에 꿀잠을 자다니 우리가 머문 침대 근처에 내 머리 높이쯤에 나무기둥이 가로로 길게 놓여 있다. 이 곳에 단 하루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박았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라는 무언의 신호인가? 빠뜨린 것 없이 배낭을 꾸린 후 1층 로비로 내려왔더니, P씨가 부지런히 아침을 차려놓았다. 메뉴는 샌드위치와 쥬스! 넘 맛있어서 감동이 밀려온다. 오늘도 27.4km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와구와구 배를 채웠다. 그.런.데.!!! 큰 형님(?)인 L씨가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Burgos)라는 도시로 점프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도착하게 될 아헤스(Ages)보다 하루 앞선 일정이다. 발 상태와 남..
[2016/06/12] Day 10, 끔찍한 추억을 남겨 준 벨로라도! 새벽 3시부터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쳤다. 결국 4시 반쯤에 배낭을 먼저 챙겨 식당으로 내려왔다. 일행들을 위해 계란을 삶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그들이 정말 그만둔다면 어쩌나 걱정하며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봤다. '제발, 마음이 바뀌었어라.' 해가 눈부신 얼굴을 드러내며 떠오름에 따라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까미노에 오를 준비를 한다. 나의 간절함이 그들의 마음에 닿은건가? 더 이상 걷지 않을 것 같던 일행들이 어느새 준비를 마친 채 식당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쁜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레알 너어어어어무 기쁘다. 오늘은 일행 중 누구도 점프를 하지 않는단다. 발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었지만, 각자의 고통과 열심히 싸워가며 걷는다. P씨는 초반부터 굉장히 빠르게 걷는다. 그를 제외..
[2016/06/11] Day 9, 흥부자 삼인방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산토도밍고! 아침 식사로 각종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 하루에 하나 이상 꼭 먹는 빵! 빵이라면 이제 질리지만서도, 어느 바에서나, 마트에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게 빵이기에,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든든하게 먹어두었다. L씨는 오늘 점프를 하겠단다.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출발하였다. Y씨는 발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며 P씨와 나에게 먼저 가란다. 그를 격려해주고서, P씨와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눠가며 함께 걸었다. 어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에 그 이후로는 그를 쳐다보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왠지 어색했다. 저..정신 차려야 되는데... 며칠 전부터 등산화가 왼쪽 엄지발가락을 계속 자극해왔다. 분명히 10mm정도 큰 것으로 사서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꾸준히 연습했는데..
[2016/06/10] Day 8, 넘나 힘든 나헤라 가는 길!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밤새 신나게 노는 사람들 탓에 잠을 제대로 설쳤다. 어제 코피까지 한 바가지 쏟은 나는 오늘의 까미노가 걱정되었다. 아직까지 점프(걷지 않고 다음 도시까지 버스로 이동)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이기에, 또한, 살면서 한 번도 쓰러져 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분명 잘 걸을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배낭을 챙긴다. 한데 섞여 버린 많은 사람들의 짐 속에서 나의 것을 골라 챙긴 뒤, 우리 일행의 스틱을 양손 가득 집어 들고 식당으로 향한다. 큰 도시에는 꼭 중국인 마트가 있다. 팜플로나에 이어 큰 도시에 머무르게 되었기 때문에 어제 L씨가 수고하여 사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매콤한 냄새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 순례자들은 너도나도 할 것없이 콜록콜록 기침 세례다. 미..
[2016/06/09] Day 7, 타파스의 천국, 로그로뇨에 도착하다! 쿠바 리브레가 선물해 준 꿀잠 덕에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까미노 초반에 선보였던 미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아침 잠이 많은 J씨를 제외하고, 우리 다섯 명은 오늘도 힘차게 길 위에 올랐다. 통증, 더위, 오르막길과의 사투를 벌이다 바위를 의자삼아 20분 가까이 쉬었다. 그러던 중, 언제 출발한 건지, J씨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는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대단해' 걷기 시작할 때 아파오던 발의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었다.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걸었다. "아, 좋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나는 무한 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잠시나마, 혼..
[2016/06/08] Day 6,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작은 마을, 토레스 델 리오! 다들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잠이 들었던 어제, 나는 잠이 안와 한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 P씨도 있었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잤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가 정신없이 자신의 베드로 올라가는 중에 2유로짜리 동전을 떨어뜨려 아침에 전해주었더니 민망하게 웃는다. 언젠가부터 P씨가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말자.' 분주하게 준비한 후, 식당에 내려와 어제 사둔 요거트, 토스트, 과일을 먹었다. J씨는 천천히 일어나겠다고 하여, 그의 베드 한쪽에 간식을 두었다. 5명이서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로비에 모였다. L씨는 나를 리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