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16] Day 14, 걸어요, 둘이서♪ 보아디야까지!

작은 마을 혼타나스에도 상쾌한 아침이 찾아왔다.

잠을 푹 잔 건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아주 좋았다.

 

어젯밤 빨아놓은 빨래를

잠들기 전에 걷어왔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잠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역시나 빨래는 아침 이슬을 담뿍 받고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다.

 

곤히 자는 순례자들을 깨울 수 없어,

우리는 미처 다 싸지 못한 배낭을 들고

빛을 찾아 식당으로 향한다.

 

 

배낭을 꾸리다, 문득 배낭 무게를 더 줄이고 싶어졌다.

여행 때부터 거의 사용한 적 없는 셀카봉, 공병 등을

과감히 버리려 하자,

P씨가 버릴 거면 자길 달란다.

 

'안 그래도 배낭 무거우신 분께서 짐을 덜지는 못할 망정...'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단 걷기 시작해서

바나 레스토랑이 있는 마을에 멈추어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알베르게를 나선다.

 

그러나 Camino Pilgrim 어플을 보니

가까운 거리에 마을이 없다.

결국,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P씨는 크루아상과 커피, 나는 초코크림빵과 물!

 

 

오늘의 까미노는

사실 걷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인 건 두말할 필요없지만,

혼자 걸었다면 매우 고되고 지루할, 그런 길이었다.

 

P씨와 수줍게 손을 잡고 함께 걸으니

지루한 길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혼자 걸었다면 정말, 얼마나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을까...'

 

 

마치 스무살의 가슴설레는 첫 사랑처럼,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을 다시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에 확신하던 나를 완전히 흔들어 깨운 P씨.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사이가 된 걸까?

 

까미노에서의 하루는 마치 일상에서의 3일같달까.

24시간 희노애락을 함께 하기에

(거칠게 표현하면, 볼 꼴 못 볼 꼴 다 보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 의지하고, 빠지게 만든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를 감당할 수 없는

혼돈으로 이끄는 건 아닌지 의아하기도 하지만,

현재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감정에 충실하기로 한다.

 


중간중간 발이 아파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격려해주고, 마사지해주고 쉬어가도록 도와준

P씨 덕분에 28km를 무사히 걸었다.

 

드디어 도착한 보아디야(Boadilla del Camino)!

 

배가 몹시 고팠는데

넘나 작은 이 마을에 레스토랑이나 바는 없었다.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긴 했으나

저녁식사를 7시에 제공한다기에

우리는 알베르게에서 판매하는

파이와 산미구엘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자기로 한다.

 

꿀맛같은 낮잠 타임 후,

알베르게에서 10유로에 제공하는 저녁식사에 참여했다.

 

 

비록 다른 순례자들과 자리는 동떨어졌지만

우리 둘 나름대로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메뉴는 가정식 요리였는데,

애피타이저로 수프 2종류와 빵,

메인으로는 P씨는 fish, 나는 beef를 택했다.

 

 

 

 

 

 

 

사실 Fish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와, 이건 진짜 맛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살살 녹는 식감!

후식으로 나온 푸딩또한 달콤~하이 맛있었다.

오늘의 제대로 된 첫 끼니에 완전 행복!

 

날이 흐린 탓인지 부쩍 날씨가 추워졌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겉옷을 더 여미며

숙소로 돌아왔다.

 

낮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솔솔 몰려온다.

부푼 가슴을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