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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15] Day 13, 힘들지만 행복한, 혼타나스 가는 길!

진동 알람이 한 번 울리기 무섭게 벌떡! 일어난다.

알베르게 내부가 워낙 넓어서

짐을 잔뜩 전시해놓고

차근차근 배낭을 꾸린다.

 

Y씨는 오늘 버스를 타고

레온(Leon)이라는 도시로 점프하기로 했다.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기에,

그는 우리가 배낭 챙길 때부터 알베르게를 나설 때까지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옆을 지키고 있다.

 

Y씨의 짧고 굵은 포옹으로 격려를 받으며,

P씨와 나 단 둘의 까미노에 나선다.

 

'지금부터는 진짜 오직 둘뿐이다!'

 

아쉬우면서도 매우 설렌다.

 

 

날이 춥고 흐리다.

우리는 알베르게를 나서며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로 '토닥토닥' 해가며 걷는다.

 

10km쯤 걸었을까,

식사를 제공하는 몇몇 바가 보인다.

갑자기 허기가 확 느껴진다.

 

 

살짝 익은 계란, 치즈, 햄이 들어간 토스트와

스패니쉬 오믈렛을 시킨다.

비쥬얼이고 뭐고, 일단 폭풍 흡입하고 나니,

마구 에너지가 솟는다.

 

배낭을 짊어지고는 다시 맞잡은 손.

그 덕분인지,

20km 지점까지 조금의 힘듦도 느끼지 않고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와, 이건 기적이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한참 걸어 내려가니,

호니요스(Hornillos)라는 마을이 나온다.

궂은 날씨 탓인지

종종 눈인사를 나눴던 일본인 순례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묵는단다.

우리는 마트에서 견과류를 산 뒤,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그 짧은 휴식 중에도 P씨는

내 상태를 살피며

정성껏 발마사지를 해준다.

벌써 열흘 넘게 한결같이

발마사지를 해주는데,

그 손길이 익숙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매일매일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다.

 

(반면, 그의 발은 본인 외에 누구도 만지지 못한다.

손만 살짝 갖다대도 간지럽다며 자지러진다.

나도 발마사지 해주고 싶은데...)

 

다시 발을 떼어본다.

몇 걸음 떼지 않아 비가 쏟아진다.

비를 피해 들어가서,

펑퍼짐한 우의를 입고,

거기에 P씨가 준 방수바지까지 챙겨입으니

완전 무장이다!

P씨는 방수 점퍼, 바지, 등산화를 신고 있어

그저 점퍼를 한번 더 여미고선

이제 진짜 출발!

 

 

31km의 장거리인 데다가

까미노 중 처음으로 내린 비라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다 말다 해서 나름 걸을 만하다.

 

비를 맞으며 걷는 와중에도

우리는 몇 번이나 행복의 탄성을 질렀다.

 

"너무 행복하다 진짜!"

 

 

 

더욱이, 본인 아픈 티는 내지 않으면서

새끼발가락의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P씨표 동키서비스(배낭을 들어주는)를 제공해주어 무리를 덜 했다.

 

'나도 그에게 무언갈 해주고 싶다. 그저 받기만... 늘 그에게 고맙다.'

 

 

드디어, 혼타나스(Hontanas)에 들어섰다!

어플을 통해 알아본 알베르게는

사진에서 보이듯 마을 초입에 있는데,

우리는 좀더 마을 깊숙이 들어가기로 한다.

 

마을의 중턱쯤 위치한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자마자 완전히 뻗어버렸다.

1시간가량 꿀잠을 자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나왔다.

 

여전히 날씨는 우중충...

급 쌀쌀해진 날씨에

덜덜 떨며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땅한 레스토랑이 없어,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 內 바를 믿어보기로 한다.

 

 

 

베이컨이 들어간 버거와 포르마쥬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와,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수제버거 맛 뺨치는 버거에,

피자는 냉동해놓은 걸

오븐에 데운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맛있지?

대.만.족!

 

고된 일정에 지친 우리는

일찌감치 씻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매일 정성스레 마사지해주고 치료해주는

P씨 덕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게다가 힘든 고비를 함께 넘으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감정을 교류하기 때문에

그 힘듦이 반감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느낀다.

 

'까미노에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