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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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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0] Day 18, 레온 가는 길에 처음으로 점프를 하다 늘 다인실에서만 자다가, 3인실을 이용하니 편하고 조용했지만 덕분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눈 떠보니 6시 7분! 서둘러 씻고 까미노 복장으로 환복한다. 어제 사 둔 음식으로 요기를 채웠다. 역대급 초장거리 37km를 걷기 위해 오늘도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많이 자서 그런지 몸이 조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P씨 역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13km 지점에 있는 마을에서 아점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STOP한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당장 먹을 수 있는 음식은 Bar에서 파는 빵 종류와 오믈렛 뿐. 남김없이 먹고선, 에너지를 충전해 다시 go go! 레온(Leon)으로 가는 길에 마을이 꽤 많았다. 그런데 마을을 관통하지는 않고, 마을 표지판을 지나쳐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걷는데..
[2016/06/18] Day 16, 푸른 정원이 딸린 알베르게가 있는, 테라디요스!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어제 사둔 바나나와 요거트로 요기를 채운 뒤 나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다음 마을까지 17km라 한다. 이 말은, 이곳을 출발하여 17km를 갈 동안 사먹을 데가 없을 거라는 것. 우리는 근처 빵집에 들러 바게트빵과 피자빵을 사서 출발했다. 자욱하게 낀 안개는 우리가 걸어갈 길에 엄청난 신비감을 조성해주었다. 가시거리가 짧아, 앞뒤로 누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는 손을 꼬옥 잡고 힘차게 걸었다. 한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길... 하지만, 자스민 꽃향기에 취해, 서로에 취해 지루한지 모르고 걸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 위에 가득했던 먹구름이 한겹 걷힌 듯 했다. (이때 ..
[2016/06/15] Day 13, 힘들지만 행복한, 혼타나스 가는 길! 진동 알람이 한 번 울리기 무섭게 벌떡! 일어난다. 알베르게 내부가 워낙 넓어서 짐을 잔뜩 전시해놓고 차근차근 배낭을 꾸린다. Y씨는 오늘 버스를 타고 레온(Leon)이라는 도시로 점프하기로 했다.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기에, 그는 우리가 배낭 챙길 때부터 알베르게를 나설 때까지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옆을 지키고 있다. Y씨의 짧고 굵은 포옹으로 격려를 받으며, P씨와 나 단 둘의 까미노에 나선다. '지금부터는 진짜 오직 둘뿐이다!' 아쉬우면서도 매우 설렌다. 날이 춥고 흐리다. 우리는 알베르게를 나서며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로 '토닥토닥' 해가며 걷는다. 10km쯤 걸었을까, 식사를 제공하는 몇몇 바가 보인다. 갑자기 허기가 확 느껴진다. 살짝 익은 계란, 치즈, 햄이 들어간 토스트와 ..
[2016/06/14] Day 12, 부르고스에서 셋의 우정을 아로새기다 까미노에서의 하루하루가 제법 익숙해지고, 오픈된 숙소에서 침낭을 깔고 자는 것이 꽤 적응되었나보다. 숙면을 취하던 중, 새벽 5시에 보이스톡이 걸려 온다. '아, 한국에서의 원치 않는 전화다.' 자고 있는 순례자들 틈을 빠져 나와 복도에서 1시간 가까이 통화를 한다. 내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는 사이, P씨와 Y씨는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가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상황이 싫었다. 거룩하기만 할 줄 알았던 까미노인데... 한국에서 끝내고 왔어야 할 일을 미루다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통화를 얼른 마무리 짓고, 서둘러 순례 채비를 마치고 내려왔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간단히 샀던 바나나, 요플레, 빵을 폭풍 흡입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Burgos)로 출발..
[2016/06/13] Day 11, 순례자들의 웃음꽃이 가득 핀 아헤스 가는 길! 벨로라도에서 맞는 아침. (적당히 마시는) 술이 발휘하는 마력은 대단하다. 예민예민한 내가 모처럼만에 꿀잠을 자다니 우리가 머문 침대 근처에 내 머리 높이쯤에 나무기둥이 가로로 길게 놓여 있다. 이 곳에 단 하루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박았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라는 무언의 신호인가? 빠뜨린 것 없이 배낭을 꾸린 후 1층 로비로 내려왔더니, P씨가 부지런히 아침을 차려놓았다. 메뉴는 샌드위치와 쥬스! 넘 맛있어서 감동이 밀려온다. 오늘도 27.4km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와구와구 배를 채웠다. 그.런.데.!!! 큰 형님(?)인 L씨가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Burgos)라는 도시로 점프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도착하게 될 아헤스(Ages)보다 하루 앞선 일정이다. 발 상태와 남..
[2016/06/12] Day 10, 끔찍한 추억을 남겨 준 벨로라도! 새벽 3시부터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쳤다. 결국 4시 반쯤에 배낭을 먼저 챙겨 식당으로 내려왔다. 일행들을 위해 계란을 삶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그들이 정말 그만둔다면 어쩌나 걱정하며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봤다. '제발, 마음이 바뀌었어라.' 해가 눈부신 얼굴을 드러내며 떠오름에 따라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까미노에 오를 준비를 한다. 나의 간절함이 그들의 마음에 닿은건가? 더 이상 걷지 않을 것 같던 일행들이 어느새 준비를 마친 채 식당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쁜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레알 너어어어어무 기쁘다. 오늘은 일행 중 누구도 점프를 하지 않는단다. 발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었지만, 각자의 고통과 열심히 싸워가며 걷는다. P씨는 초반부터 굉장히 빠르게 걷는다. 그를 제외..
[2016/06/11] Day 9, 흥부자 삼인방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산토도밍고! 아침 식사로 각종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 하루에 하나 이상 꼭 먹는 빵! 빵이라면 이제 질리지만서도, 어느 바에서나, 마트에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게 빵이기에,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든든하게 먹어두었다. L씨는 오늘 점프를 하겠단다.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출발하였다. Y씨는 발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며 P씨와 나에게 먼저 가란다. 그를 격려해주고서, P씨와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눠가며 함께 걸었다. 어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에 그 이후로는 그를 쳐다보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왠지 어색했다. 저..정신 차려야 되는데... 며칠 전부터 등산화가 왼쪽 엄지발가락을 계속 자극해왔다. 분명히 10mm정도 큰 것으로 사서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꾸준히 연습했는데..
[2016/06/09] Day 7, 타파스의 천국, 로그로뇨에 도착하다! 쿠바 리브레가 선물해 준 꿀잠 덕에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까미노 초반에 선보였던 미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아침 잠이 많은 J씨를 제외하고, 우리 다섯 명은 오늘도 힘차게 길 위에 올랐다. 통증, 더위, 오르막길과의 사투를 벌이다 바위를 의자삼아 20분 가까이 쉬었다. 그러던 중, 언제 출발한 건지, J씨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는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대단해' 걷기 시작할 때 아파오던 발의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었다.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걸었다. "아, 좋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나는 무한 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잠시나마,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