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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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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5] Day 23, 산 꼭대기 마을 폰세바돈에서 휴식을! 밤새 끙끙 앓는 P씨가 깨지 않도록 진동으로 알람을 맞춰 둔 터라, 나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피로가 얼마나 쌓였는지는 관심없다. 눈을 뜨자 마자 P씨의 몸에 손을 대어보니 그야말로 불덩이다. '걷는 건 도저히 어렵겠다.' 우리는 결국 이곳, 폰세바돈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1층에 위치한 리셉션으로 내려가 하루치 숙박 비용을 추가로 내고는 '친구가 아프다. 열 나고, 토하고, 배탈도 났다.'를 설명하기 위해, 손짓, 발짓 다 해가며 도움을 청해본다. 그랬더니 인상 좋고 마음씨는 더 좋은, 오빠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나잇대의 주인 아저씨가 체온계와 카모마일차(4유로)를 준다. 그리고, P씨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에 이온음료인 Aquarious를 사서 알베르게로 올라갔다. '제발, 제발'을..
[2016/06/24] Day 22, 산 위에 형성된 마을, 폰세바돈으로! 베드버그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나는 결국 1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아스토르가에서의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순례길은 이번에 묵은 알베르게정도의 시설을 갖춘 숙소에서 불편하게 잠들고 깨고, 살기 위해 밥을 겨우 챙겨 먹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걷는 것이었다. 순례길에 오르면서 무얼 그렇게 기대했길래, 이만큼의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에서 위생 운운하며 불안감에 잠을 설치는 건지. 많이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오늘을 계기로, 편안함만을 좇기보다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고 꿋꿋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순례를 이어 나가야겠다. 아침식사로 P씨표 건강 샐러드, 초코시리얼, 과일을 든든하게 먹고서 7시 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힘겨운 상황일 수록 정신..
[2016/06/23] Day 21, 텅 빈 느낌의 큰 마을, 아스토르가 과연 산마르틴이 매우 작고 고요한 마을임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의 주인 언니는 활력과 정이 흘러넘쳤다. 어제 저녁도 그 정성에 감동받았었는데 오늘 아침, 정성 가득한 샌드위치와 물을 챙겨주셨다. 어제 냈던 식사비 8유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단다. 힘을 잔뜩 받아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살짝 종아리 앞쪽이 저려와서 P씨가 밴딩을 해주었다. 밴딩을 한 이후, 발 상태는 거의 이상 무!였는데 왜 그런지 또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오늘의 까미노는 푸르른 자연 속이 아닌 차도 옆에 난 좁은 도로를 한참 걸어야 했다. 우린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벌벌 떨며 차도 반대쪽으로 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해가 금..
[2016/06/17] Day 15, 규모는 작지만 깊은 온정을 느낀 까리온! 웬일인지 늦장을 부리다가 아주 느긋하게 9시반이 지나서야 배낭을 챙겨 나왔다. (아마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24.6km라, '이쯤이야' 얼마 안 걸릴 거라는 자만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베르게에서 하몽 & 치즈 계란말이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식욕이 붙을 대로 붙은 나는 그 큰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놀라는 P씨.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하하' 기분좋게 발걸음을 뗐으나 왼쪽 새끼발가락과 엄지 바깥쪽이 말썽이었다. 이를 재빨리 알아챈 P씨는 또 다시 동키서비스를 해준단다.ㅠ^ㅠ 그를 아끼는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노할 일이다. 이 길이 지루한 길이라고들 하지만 그와 함께 하기에,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간간이 느껴지는, 조금은 춥지만 시원한 바람과 향기가 우리를 마냥 행..
[2016/06/16] Day 14, 걸어요, 둘이서♪ 보아디야까지! 작은 마을 혼타나스에도 상쾌한 아침이 찾아왔다. 잠을 푹 잔 건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아주 좋았다. 어젯밤 빨아놓은 빨래를 잠들기 전에 걷어왔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잠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역시나 빨래는 아침 이슬을 담뿍 받고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다. 곤히 자는 순례자들을 깨울 수 없어, 우리는 미처 다 싸지 못한 배낭을 들고 빛을 찾아 식당으로 향한다. 배낭을 꾸리다, 문득 배낭 무게를 더 줄이고 싶어졌다. 여행 때부터 거의 사용한 적 없는 셀카봉, 공병 등을 과감히 버리려 하자, P씨가 버릴 거면 자길 달란다. '안 그래도 배낭 무거우신 분께서 짐을 덜지는 못할 망정...'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단 걷기 시작해서 바나 레스토랑이 있는 마을에 멈추어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알베르게를 나선다. 그..
[2016/06/15] Day 13, 힘들지만 행복한, 혼타나스 가는 길! 진동 알람이 한 번 울리기 무섭게 벌떡! 일어난다. 알베르게 내부가 워낙 넓어서 짐을 잔뜩 전시해놓고 차근차근 배낭을 꾸린다. Y씨는 오늘 버스를 타고 레온(Leon)이라는 도시로 점프하기로 했다.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기에, 그는 우리가 배낭 챙길 때부터 알베르게를 나설 때까지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옆을 지키고 있다. Y씨의 짧고 굵은 포옹으로 격려를 받으며, P씨와 나 단 둘의 까미노에 나선다. '지금부터는 진짜 오직 둘뿐이다!' 아쉬우면서도 매우 설렌다. 날이 춥고 흐리다. 우리는 알베르게를 나서며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로 '토닥토닥' 해가며 걷는다. 10km쯤 걸었을까, 식사를 제공하는 몇몇 바가 보인다. 갑자기 허기가 확 느껴진다. 살짝 익은 계란, 치즈, 햄이 들어간 토스트와 ..
[2016/06/07] Day 5,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로! 어젯밤엔 꽤 숙면을 취한 것 같다. 5시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드디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눈을 반쯤 감고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채비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1. 침낭 돌돌 말아 배낭에 넣기 2. 세수, 양치, 순례복으로 갈아입기 3. 작은 가방1(세면도구), 2(의류) 넣기 4. 판초 우의 얹기 5. 빠뜨린 물건 없는지 확인하기(빨래, 스틱) 우리 5명의 멤버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부지런한 L씨가 후랑크소시지를 굽고, 초코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커다란 그릇에 담아 올렸다. 나는 오렌지를 깎아 접시에 담았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고선,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텔라(Estella)의 공립 알베르게(Municipal)가 붐빈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식사..
[2016/06/06] Day 4, 곡소리 가득한 푸엔테 라 레이나 가는 길! 어젯밤, 두 동행님들의 지독한 과음으로 걱정에 잠을 못 이룬 나는, 2시간의 짧은 수면 후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P씨는 팜플로나에서 대학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가야한다며 다음 마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팜플로나가 큰 도시여서 그런지, 이 곳에서 2박 이상 묵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보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순례자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다. 수면시간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멋지게 걸었다. 걷는 속도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처음에 가졌던 마음인, '무조건 빨리, 빨리!'보다는 이제는 동행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져, 뒤쳐진 동행들을 기다려 가며 여유롭게 걸었다. 바로, 이 곳을 넘는 모든 이가 용서하지 못 한다는 용서의 언덕! 그 가파르고도 뜨거운 언덕을, 나는 이를 악물고선 뒤도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