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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25] Day 23, 산 꼭대기 마을 폰세바돈에서 휴식을!

밤새 끙끙 앓는 P씨가 깨지 않도록

진동으로 알람을 맞춰 둔 터라,

나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피로가 얼마나 쌓였는지는 관심없다.

눈을 뜨자 마자

P씨의 몸에 손을 대어보니 그야말로 불덩이다.

 

'걷는 건 도저히 어렵겠다.'

 

우리는 결국 이곳, 폰세바돈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1층에 위치한 리셉션으로 내려가

하루치 숙박 비용을 추가로 내고는

'친구가 아프다. 열 나고, 토하고, 배탈도 났다.'를 설명하기 위해,

손짓, 발짓 다 해가며 도움을 청해본다.

 

그랬더니 인상 좋고 마음씨는 더 좋은,

오빠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나잇대의 주인 아저씨가

체온계와 카모마일차(4유로)를 준다.

그리고, P씨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에

이온음료인 Aquarious를 사서 알베르게로 올라갔다.

 

'제발, 제발'을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의 체온이 매우 높음을

다시 한번 손으로 느낄 수 있다.

체온계로 측정해보니, 역시나...

39도에 육박한다.

 

울상이 된 나는 열을 낮추기 위해

그에게 타이레놀을 먹이고

아쿠아리우스로 한 번씩 허기를 달래게 하였다.

머리에는 물수건을, 몸은 찬 수건으로 닦아주기를 반복하였다.

 

다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P씨.

 

오전 11시쯤이 되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모양이다.

열을 재어보니 37도 언저리다.

 

'휴, 조금 떨어지긴 했네.'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한 나는 P씨와 함께

1층에 딸린 바로 내려가

카르네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물론 P씨는 그저 아쿠아리우스로 목을 축일 뿐이었다.

위가 다시 커진 나로서는

샌드위치 하나정도는 겨우 요기를 채운 수준에 불과하다.

 

 

바 옆에 있는 마트를 둘러보는데,

순례자스러운 멋진 모자가 있다.

점점 돈이 바닥나고 있기에

그냥 기념 사진만 찰칵-찍고는 갖다놓는다.

 

P씨가 조금 걷자고 한다.

우리는 여유롭게 마을을 걸으며

오늘 아스토르가를 출발하여

일찌감치 도착한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한참동안 쉬면서

충분치 못한 수면을 보충한다.

 

오후 5시쯤,

어제 가지 못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와 마주 앉았는데,

야위어도 너무 야위었다.

 

 

P씨는 무엇을 먹기엔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아

나만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조금 민망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결정장애인 나를 위해 그가 주문을 해주었다.

호박치즈수프와 송아지고기.

애피타이저 + 메인 느낌으로다가 시킨 건데... 헉!

 

 

양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러웠다.

이..이만큼이 얼마라고...?

 

 

수프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P씨에게 권하니,

그는 거절하고 또 거절하다가

못 이기는 척 겨우 모기만큼 떠 먹는다.

 

 

송아지고기는 걱정한 것에 비해

냄새도, 비린 맛도 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완전 맛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P씨의 상태가 금세금세 호전되지 않아 걱정이다.

그는 내일도 아프면 나 혼자라도 걸으란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딱 거절해버렸다.

 

이렇게 아픈 사람을 눈 앞에서 본 것도,

간호를 해 본 것도 처음이다.

 

과연 내일은 그와 함께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