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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23] Day 21, 텅 빈 느낌의 큰 마을, 아스토르가

과연 산마르틴이 매우 작고 고요한 마을임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의 주인 언니는 활력과 정이 흘러넘쳤다.

어제 저녁도 그 정성에 감동받았었는데
오늘 아침, 정성 가득한 샌드위치와 물을 챙겨주셨다.
어제 냈던 식사비 8유로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단다.

힘을 잔뜩 받아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살짝 종아리 앞쪽이 저려와서
P씨가 밴딩을 해주었다.
밴딩을 한 이후, 발 상태는 거의 이상 무!였는데
왜 그런지 또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오늘의 까미노는 푸르른 자연 속이 아닌 차도 옆에 난 좁은 도로를 한참 걸어야 했다.
우린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벌벌 떨며 차도 반대쪽으로 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해가 금세 떠올라서 낮부터 더웠다.

8시쯤 아침을 먹기 위해 어느 마을에 멈춰섰다.
P씨는 내게 앉아서 쉬라고 말하고는
본인이 알아서 시키고 오겠다며 카운터로 향한다.

알베르게  주인언니가 싸준 샌드위치와
방금 주문한 빵과 초코케잌,
음료로는 그는 아메리카노를, 졸면서 걷는 나를 위해서는 라떼를 시켰다.
덕분에 배는 든든해지고, 정신은 맑아진 채로 다시 까미노에 오를 수 있게 됐다.

P씨의 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좀 힘겨워 보이는듯 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서
안쓰럽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규모가 큰 마을이 보였는데,
바로 아스트로가(Astorga)다.
생각보다 정~말 크다.

아스트로가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마을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까미노 첫날 피레네에서
무릎을 짚으며 힘겹게 걷던 크리스틴과
그 일행이다.
이들과는 오며 가며 자주 만났으며
그때마다 서로 격려해주고
간단한 대화를 나눠왔기에 늘 반갑다.
그들은 오늘을 시작으로 꾸준히 28km의 강행군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스토르가를 지나쳐 다음 마을로 간다는 그들.
아마 오늘로서 그들을 만나는 건 마지막이지 않을까?

나름 오랜시간 봐왔던 그들이기에,
아쉽지만 안녕을 고하며,
그들의 남은 까미노를 응원해주었다^.^

아스토르가의 첫 인상은,
분명 큰 마을인 건 확실한데
뭔가 느낌이 한물 간 듯(?) 했다.
유령 도시의 느낌이랄까?
마침 씨에스타라 가게, 레스토랑 등이
너도나도 문을 닫은 것도 한몫하나보다.

아스트로가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동굴을 연상시키는 알베르게 내부.
왠지 모르게 습하고 퀘퀘한 느낌에
구석기 시대 유목민이 된 기분이 들지만,
내일 걸을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라면
이 알베르게가 최상의 위치다.

샤워 후,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역시나 탁월한 P씨의 안목으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당당히 '맛집'이라 부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완전 푸짐하고 맛있는 고기를 맘껏 먹었다.

양이 너무너무 많아서 한참을 앉아서 먹다 쉬다 먹다 쉬다했다.
2인 세트인데...
결국 남은 건 포장해왔다.

마트에서 샐러드 재료와 우유, 씨리얼 등을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우리는 알베르게 로비에 있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오늘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3주 가까이되는 시간동안 24시간을 붙어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왔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알아갔으면 좋겠다.

사실 귀국 항공편으로 머리가 좀 아프다.
그와 조금 더 함께 하고 싶어
항공편을 변경하려 시도했지만
수수료는 둘째 치고 좌석이 만석이었다.
맞는 날짜가 발견되길 소망한다.

누워서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에 관하여 찾아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례자의 최대의 적, 베드버그가 이곳에서 출몰한 적이 있다고...

그때부터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왠지 베드버그가 이미 나를 물어버린 느낌이 들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애쓰다가
다시 휴대폰을 열자마자
아주 작은 빨간 벌레가 머리맡으로 기어가는 게 아닌가!
오.마이.갓
다행히 베드버그는 아니었지만,
하..오늘 잠은 다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