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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6/10/17] 경기옛길 삼남길 제 3길, 모락산길을 걷다

생각지도 않게 이틀 간의 휴일이 주어졌다.
쉬는 날 웬만하면 집에 붙어 있지 않는 나는,

요새 몸이 계속 아픈 게 억울했다.

지난 토요일은 정말 꼼짝않고

침대에 누워 열두시간 넘게 잔 것 같다.
남자친구가 추천해준 배+꿀차를 만들어

뜨뜻하게 마신 탓에 몸이 금세 회복되었다.

오늘 아침, 늘 아침을 요란하게 알리시던

아버지께서 웬일로 날 깨우지 않으셨다.


오전 9시쯤 눈을 떠 거실로 나가니,

아침에 어머니께서 내가 오늘 쉬는 날이니

절대 깨우지 말라셨단다ㅋㅋㅋㅋ

아침식사 후,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개천절이 낀 휴일 때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경기옛길 삼남길 제 3길(모락산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주저하지 않고 배낭을 꺼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을 살려 배낭을 꾸렸다.
500mL 물 2병, 바나나 2개, 귤 2개,

교회에서 나눠준 물티슈, 주유소 휴지,

바람막이를 챙겨 넣었다.

집에서 나선 시간은 오전 11시 5분.
12km코스인데다가 숲길이기에

이동시간을 포함해서 5~6시간을 예상했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인덕원역까지 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가야한다.

순례길 전과 후 내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여곡절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시 출발점으로 가는 것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인덕원 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바로 근처의 분식집에서

김밥 2줄과 빵 몇 개를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리버리하다가 타야할 버스를

몇 대나 놓치고 30분 넘게 기다려 겨우 탔다.
이미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부용촌'에서 내리라기에 거기서 내렸는데,

알고 보니 전전 정류장인

'백운 호수'에서 내려야 이동하기가 편하다.

마음속으로 긍정 열매를 꿀꺽 집어 삼켰다.
기분 좋게 2개 정거장을 걸어 되돌아가며

잔잔하고 넓은 호수를 감상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백운 호수 정류장에 못 미친 지점인 삼거리에서

지하차도 쪽으로 가면 되었다.


 

요 표지판을 기점으로

 나의 '까미노 데 골사그내'가 시작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길이 도로 옆길인데...
그 중에서도 지하차도나 터널은 최악이다.
몸을 벌벌 떨리게 하는 자동차의 굉음과

몇 시간만 서 있어도 폐가 시커멓게 변할 것만 같기 때문.

다행히 짧은 터널이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완전 크게 튼 채로 잽싸게 통과했다.
지하차도를 나오자마자

평화로운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뒷골 삼거리 표지판을 지나,

건너편에 모락산 둘레길로 들어가는 입간판이 서있다.


 

 

힘차게,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웃음꽃이 절로 피어난다.


 

 

 

100미터쯤 걸어 올라가니,

여기서 100미터를 더 올라가면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사당이 있다는 표식이 보인다.

 

 

저 곳이 사당인가보다!
서둘러 풀밭을 오르니,

그에 대한 설명이 적힌 표지판과 함께

굳게 닫힌 문이 맞이해준다.


 

 

 

담벼락 너머로 휴대폰을 들이 밀어

대충 안을 찍고는 사당을 지나쳤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임영대군의 묘가 나온단다.

 

 

갈림길이 나올 땐, 표지판도 표지판이지만

휴대폰 맵을 반드시 확인한다.
왜냐? 난 혼자고, 내 자신을 못 믿으니까^^

 

 

 

밤송이가 길 곳곳에 널려있다.
유일하게 밤을 품고 있는 밤송이!

 

뭔가 어마무시한 묘가 나올 것처럼

길게 늘어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드디어 임영대군 묘에 도착!
음, 남의 묘이기에 별 감흥이...하하
이곳은 굳이 들르고 싶어서 왔다기보다는

둘레길 가는 길이라 생각해서 들른 건데

알고 보니 옆길이었다.

다시 돌계단을 내려와

둘레길 코스로 재진입한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가-하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걷는데, '띠로리'!!!

저 멀리 거대한 개 두 마리가

길 한 가운데 서서 왕왕 짖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제대로 둘레길을 걷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아저씨께

저~기까지만 태워달라고 할까?

아니면 빙 둘러가는 다른 길이 있진 않을까?
별 생각을 다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혼자 우왕좌왕 왔다리 갔다리하다

설마 개가 물기라도 하겠나 싶어

용기내어 그 곳으로 다시 갔는데,

어라? 개들이 없다!


너무 신이 난 나는

재빨리 그곳을 지나쳐 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시골시골스러운 마을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차고가 너무 귀여워 찰칵!

 

 

알록달록 여러가지 색을 뽐내며

가을의 절정을 보여주는 단풍나무.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촬영이라도 하듯

돌담 밖으로 뻗어나온 코스모스.

기분 좋게 사진을 찍고 무심코 건너편을 보는데,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건지 검둥개가 무심하게 날 쳐다본다.

 

흠칫 놀랐지만,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개를 오버스럽게 무서워하긴 하는구나...(머쓱)

 

홍시를 말리는 정감 넘치는 어느 집을 지나,
한참 도로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숲길 등장!

 

 

길을 잃을 만하면 표지판이 나타난다.

 

 

 

키가 작은 앙증맞은 나무들이 심어져있다.
한 그루만 가져가서

겨울에 크리스마스 트리 삼고 싶다. 캬캬


 

오매기 마을까지는 1.30km!
물론 저곳이 오늘의 목적지는 아니다.

 

 

오매기 마을에 다 와가자 나타난

도로명 표지판 '오매기중간길' 

 

멋드러진 집을 짓고 있는 모양이다.

 

'오매기 마을'에 도착했는데,

뭔가 그럴싸하게 꾸며져있진 않았다.
그저 도착하자마자 바톤 터치하듯,

이번엔 표지판에 사근행궁터 3.43km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오매기 마을을 지나치는데 만난 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그림 실력들이 꽤나 좋으시다.
아주머니들께 들리도록

"우와~ 잘 그리신다>.<"를 외친 후,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트 나무란다.
아이고, 끼워 맞추기네-하며 피식, 웃으면서도

어느 순간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매기 마을에 대한 설명이

돌연, 마을 끝자락에 나타난다.

 

 

 

삼남길 쉼터도 있다.
마을 주민 한 분이 쉼터 설립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글을 써 놓았다.
쉼터 설립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신 듯..!

곧 도로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한번 휴대폰 맵으로 가야할 곳의 위치를 파악한다.
삼남길 코스, 생각보다 힘들지도, 그리 길지도 않다.

 

고추를 말리고 있는 온실(비닐하우스).
(예전에 공부할 때, 고추는 고온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비닐하우스에서 온도를 맞춰 주어

재배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린이집쪽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언젠가 까미노에서 본 적이 있던 금빛 논밭을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순간 밀려드는 행복감!

 

까미노에서는 노란 화살표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면,

이곳 경기 옛길에서는

빨강, 초록의 화살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걷고 또 걸어 세 갈래길에 다다랐다.

 

 

오른쪽 길은 의왕시내, 사근행궁터를 거쳐 가는 길이다.
딱히 이 복장으로 시끌한 시내를 가고 싶진 않다.
오늘의 목적지인 '골사그내'로

더 빠르게 향하기 위해 직진!

 

골사그내까지 1.33km 남았단다.
현재 시간 오후 3시. 정말 금세 왔다.

 

 

 

 

 

항아리가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으며 작은 다리를 건너자,

벽화 마을을 연상시키듯,
에메랄드와 노랑 페인트 옷을 입은 집들이 보인다.


 

 

누가, 왜 이 신발을 올려 놓았을까?
관광객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치해놓은 걸까?

 

왜소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잠시 앉아 쉬어 가실 것만 같은 작고도 낡은 의자.


저 멀리 오고 계신 할머니께서 내게,
직진 길로 가면 공사를 하고 있어

 걷기 좋지 않다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되돌아가 시내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아

그대로 직진한다.

 

세상을 몇 십년은 더 많이 사셨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나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전해주시고픈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시가 대문 위에 적혀 있다.


 

집 주인분께는 죄송하지만,

소박하게 널린 빨래조차 너무 좋다.

예쁜 마을을 빠져 나오자

다시 한번 빨간 화살표가 날 인도한다.

 

지금부터 사진 속의 저 아저씨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계속 등장하시는데...!


 

나보다 몇 발자국 앞서서 걸어 가시는 아저씨.

관광객은 아니신 듯한데

삼남길을 산책삼아 걸으시나보다.

걷다보니 어느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뭐지-하며 길을 되돌아 나왔다.

 

아! 이 길로 갔어야 하는구나.
분명 아까 저 아저씨도

내가 잘못 간 길로 간 것 같은데,

그쪽에 사시는 분이신가?

 

올바른 길을 따라가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그 아저씨가 저 앞에 계신다.
이쯤되면 아저씨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걷다보니 아저씨가 안 보이시기에

 이제 진짜 집으로 가셨나 싶으면,

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시고.


결국 날 가엾게 바라보시던

어느 주민 할머니의 안내로

골사그내까지 갈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무지 버스가 멈추질 않는다.
버스 도착시간을 알리는 전광판도 작동하는데

왜 버스가 안 서지?

이상하다 싶어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이건 뭐, 이동시간이 더 길어.'
301번 버스를 타고 범계역 정류장에서 내려 지하철로 환승!
아까 사둔 김밥을 우적우적 먹으며 집으로 향한다.

우여곡절은 많았어도,

참 행복하고 여유로운 오후였다.
언젠가 경기 옛길의 다른 코스들도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