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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7/02] Day 30, 산티아고에 도착하다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완전 꿀잠을 잤다.

Camino Pilgrim 어플의 추천 일정에 따르면

오늘의 목적지는 페드로조(O Pedrouzo)다.

 

그러나 우리는 조바심이 났다.

나의 귀국 날짜로 인해

마드리드로 가야하는 날은 7월 4일.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도착 예정일은 내일인 7월 3일.

 

'내일 오후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다음날 바로 마드리드로 가야한다고?'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도 드리고 싶고,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Fisterra)에도 다녀오고 싶은데...

일정이 너무 빡빡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주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오늘 산티아고까지 가자!'

 

아르주아에서 산티아고까지는 39.2km

자, 그렇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39.2km를 악착같이 걸어서 가느냐.

일부 구간을 택시로 이동하느냐.

 

우린 후자를 택했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걸으니

새삼 무겁게 느껴지고 힘이 든다.

 

8km쯤 걸어가 나타난 바에

배낭을 내려놓고 택시를 타기로 한다.

페드로조까지 딱 10km만 택시로 이동하자!

 

택시에 오르니

비로소 오늘 진짜 산티아고에 가는건가-

하고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페드로조까지는 20분쯤 걸렸다.

다시 산티아고까지 20km를 걷기 위해

배낭을 재정비하기로 한다.

 

어느 바에서 음료 하나를 사서

테라스에 한 자리 차지하고선

배낭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꺼낸다.

침낭을 포함하여 잡다한 것들을 버렸다.

 

부피가 확 줄어든 배낭을 메보니,

와- 어깨에 뭔가 '살포시' 얹어진 기분이다.

 

우리는 그렇게,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여정만큼은

두 발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까미노 표지판에 새겨진 남은 km가

왜 이리도 빠르게 줄어드는지

왠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산티아고 공항이 보인다.

이제 정말 산티아고에 다 와가나보다.

SANTIAGO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기에 서로를 찍어주고 있자니

 

지나가는 순례자 한분이

둘이 서보라며 커플샷을 찍어주신다.

히히- 감사합니다아

 

 

누군가가 산티아고 가는 길,

그 마지막 4km는 맨발로 걸으라고 권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평지로 내려가는 계단에

꽤 많은 등산화가 놓여 있다.

 

그런데 걷다보니

도저히 맨발로 걸을 만한 길이 아니다.

'아스팔트의 이 뜨거운 길을 맨발로?'

 

게다가

산티아고에 다다를수록 발은 아파오고,

20km를 쉬지 않고 걷다보니

점점 지쳐간다.

 

불과 한두시간 전만 해도

오늘로서 까미노를 마치는 게 섭섭했는데

힘들다보니 얼른 도착했으면- 싶다.

 

산티아고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아직도 2km가 더 남았다.

우리는 곡소리를 내가며 꾸역꾸역 걷는다.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축제를 하는 건지

무대 위 가수의 노래에 맞추어

사람들이 춤 추고 난리가 났다.

 

자, 대성당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대성당 뒤편이 먼저 보이고,

코너를 도니, 드디어 도착이다!!!

 

정말 많은 순례자들이 배낭을 벗어던진 채

성당 앞 광장에 널브러져있다.

 

우리도 서로를 축하해주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대성당이 공사중이라

외관이 그리 멋지지 않다.

 

또, 누군가 '순례길 완주를 축하합니다!'라는

폭죽이라도 터뜨려주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허무한 기분이다.

 

그렇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P씨를 바라보는데

응?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지 울..고 있다!

그를 안고는 토닥이며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다른 순례자들에게 부탁하여

커플샷을 찍고는

그늘로 이동하여 배낭을 내려놓는다.

 

 

신기하게도 길 위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꽤 보인다.

그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순례 사무실로 이동하여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받기로 한다.

 

대성당에서 2-3분을 걸어가니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줄을 서서 10여분을 기다리니 차례가 왔다.

직원이 증명서에 출발지와 이름을 써주면서

생장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하니 대단하단다.

넘나 뿌듯하여라>_<

 

 

통을 구입하여 증명서를 말아 넣고는

숙소를 찾기 위해 다시 대성당쪽으로 간다.

그런데, 중심부에는 알베르게가 없단다.

땅값이 비싸서 그런가ㅠ^ㅠ

 

하는 수없이 호스탈을 찾는데,

이럴수가, 죄다 60유로 이상이란다.

결국 우리는 60유로를 주고

어느 호스탈에 이틀을 묵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저녁 9시에 오픈한다기에

우리는 실컷 씻고, 실컷 낮잠을 자다 나왔다.

 

'아 배고파...'

이건 저녁이 아니라 거의 야식 수준이다.

 

블로그, Trip advisor, 현지인 추천 등을 통해

이곳저곳을 들락날락 한 끝에,

어느 씨푸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우리는 뿔뽀 요리 하나와

각종 생선, 새우, 오징어 등이 나오는

해산물 모듬을 주문했다.

 

 

뿔뽀가 나왔다!

근데 웬 고춧가루 범벅이...

 

뿔뽀 요리는 원래 이렇단다.

맛을 보니, 미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맛있진 않으나

쫄깃한 식감과

한입 크기로 썰어져서 나온 덕에

나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어서 나온 해산물 모듬은

가격은 매우 비싸지만

생선의 식감이 아주 부드럽고 신선해서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모조리 다 먹었다.

 

P씨 또한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 모양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P씨가 대부분의 식사비를 지불했었기에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기로 마음 먹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조명이 켜진 대성당을 다시 한번 구경하고,

제법 쌀쌀한 날씨에

얼른 호스탈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