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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28] Day 26, 사리아로 점프하다!

까미노 초반에 기세 좋게 무리해서 걸었다싶더니,

결국 발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동행하게 된 멤버들마다

탈이 난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짧게나마 끈끈한 우정을 다졌던

B씨, L씨, P씨, J씨, Y씨, 그리고 나까지,

우리 여섯 명은 발 상태따라, 일정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나는 현재 P씨와 함께 걷고 있지만.

 

P씨와 나 둘이 걸은 이후,

나의 발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갔고,

P씨또한 식중독이 의외의 복병으로 작용하여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느 도시에는 하루 더 머물기도 하고,

버스나 히치하이킹으로 점프하기도 하여,

현재 우리는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200km 남짓하게 남겨두고 있고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날(7월 4일)까지는 5일이 남았다.

하루에 약 40km를 걷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 한번 점프를 감행해야 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사리아(Sarria)로 점프하기로 결정했다.

까미노에서 의사이자 기부천사로 활약한

P씨가 약국에 들러 이것저것 살 게 많단다.

 

약국에 들렀다가 버스타고 사리아로 가려 하는데

약국 open 시간도 그렇고, 버스 시간도 그렇고해서

그렇게 일찍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느릿느릿 배낭을 꾸려 거의 꼴찌로 나섰지만,

우리는 버스타는 것과 관련하여 정보를 얻기 위해

다시 한번 Leo 알베르게에 들렀다.

알베르게 주인 아주머니가 막 문을 잠그시려는 참이었다.

 

 

아주머니와 기념 사진 한 방을 찍고서

우리는 정말로 알베르게와 주인 아주머니에게 안녕을 고했다.

 

알베르게에서 조금만 걸어나오면 약국이 있다.

우리는 약국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아

open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운다.

 

 

ABANCA라는 은행은 스페인을 여행할 때부터

넘나도 흔하게 보아온 은행인데,

비야프랑카 버전의 이 은행 건물은 유독 멋지다!

약국 옆에 위치해 있길래 사진을 남겨본다.

 

 

우리가 앉은 벤치 뒤편에는

꽤 유서 깊어보이는 박물관이 있다.

 

1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약국 주인 언니가 나타났다!

필요한 약을 사서는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얼마 전, 레온 가는 길에 점프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제 시간에 오지 않아 낭패를 보았던 우리는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니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는 P씨.

오늘도, 여전히 그의 배낭은 묵직하다.

그가 종종 '호구'를 자처하여

본인의 배낭과 내 배낭을 앞뒤로 메고 걸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에게 배낭을 달라고 해서는

직접 메보니,

무거워서 걷기 힘든 건 확실하긴 한데,

이게 앞뒤 무게 균형은 맞는다. 신기방기!

P씨의 대단함을 다시금 느낀다.

 

 

버스 시간까지 아직 많이 남기도 해서

우리는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기로 한다.

 

 

문득, 그의 다리를 보니 내 다리 굵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털의 억센 정도와 탄 정도랄까?

 

그렇게 한참을 꽁냥거리며 기다리다

저 멀리, 코너를 돌아 이쪽으로 오는 루고(Lugo)행 버스가 보인다.

 

*사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루고까지 이동한 뒤,

루고에서 다시 사리아로 이동해야 한다.*

 

재빨리 탑승!

우리는 버스에서 이야기도 하고,

지난 사진과 영상도 보고,

드르렁 자기도 했다.

 

기나긴 여정 끝에 사리아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아마 사리아를 향해 걸어 온 순례자들은

일찌감치 도착하여 지금쯤 씨에스타를 즐기고 있겠지.

 

Camino Pilgrim 어플로 살펴보니,

사리아에 알베르게가 진짜, 지인짜 많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

알베르게가 밀집된 좁은 골목가에 들어선다.

 

꽤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탈리안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들어간다.

 

 

이 알베르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Y씨가 사리아에 오면 꼭 묵으라던 그곳이다.

신라면을 끓여준다는 사랑스러운 알베르게.

그치만 내일 까미노 중에

한국 음식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기에

오늘은 라면을 사먹지 않기로 하였다.

 

베드를 배정받고는,

(점프를 하였지만 땀은 흘렸기에)

한바탕 샤워를 해주고는 밖으로 나온다.

 

시간이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 큰 도시에서 잠만 자고 가기엔 아쉽다.

 

 

전망대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화보 촬영하는 것마냥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는다.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작은 바를 제외하고는

문을 연 레스토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우리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믿어보기로 한다.

 

피자 하나, 구운 새우 요리 하나, 파스타 하나를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P씨는 알베르게에 방치(?)된 핑크핑크 기타를 가지고 와서는

자리에 앉아 분위기 있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하루에 몇십 킬로미터씩 걷느라 지친 그들에게,

 이 감미로운 선율과 목소리는 선물과도 같으리라!

 

 

공연(?)을 한창 하는 중에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비주얼은 단연 대.박.

맛은 더.대.박.

P씨는 조금씩 조금씩 먹는데 비해,

난 너무너무 배가 고팠던지라

체할 기세로 우적우적 흡입한다.

새우의 반 이상을 내가 다 먹었다.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고는

다시 기타 연주와 노래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어떤 할아버지 순례자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짜고짜 사진을 찍자시는 할아버지.

 

 

우리 둘의 모습이 좋아보인다나 뭐라나.

나이가 지긋하신데,

배낭에, 카메라까지 들고 다니신다?

 

아마 순례가 처음은 아니신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모르긴 몰라도 멋진 영혼을 지니신 분 같다.

 

 

우리가 한참동안 있어서인지, 아니면

멋진 공연에 대한 보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저트를 무료로 주신다.

그것도, 무려 브라우니를 *_*

 

어느새 주위가 캄캄해졌다.

배도 부르고, 잠도 솔솔 온다.

무겁게 감겨오는 눈과 사투를 벌이다

내일 힘차게 걸을 것을 기대하며

2층 알베르게로 올라왔다.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Good night, Sarria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