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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2016/06/19] Day 17, 평화로운 마을, 엘 부르고 라네로!

일찍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려는데

리셉션이 열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느즈막하게 일어난 순례자들이

배낭을 꾸려 알베르게를 떠날 동안

우리는 주전부리를 먹으며 기다린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냥 일단 출발하고 배낭은

다음 마을에서 부칠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한다.

 

드디어 리셉션이 열리고,

동키서비스에 대해 문의하니 잘 못 알아 듣는다.

P씨가 한참을 설명한 끝에

그제야 알아듣고 봉투를 내어준다.

오늘의 목적지를 적어 배낭에 달고, 출발!

 

힘차게 몇 발자국을 뗀 것도 잠시,

봉투에 택배비를 넣지 않은 것이 생각나 다시 되돌아갔다.

내가 미안함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P씨는 너무나도 따뜻하게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며 실수를 너그럽게 감싸준다.

그렇게 예쁜 정원이 딸린 알베르게를

다시 한번 들르고 나서야,

진짜 출발!

 

7km쯤 가니 사하군(Sahagun)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배가 너무 고프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조식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좀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어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로 한다.

엇! 그런데 생각보다 가격이 세지 않다.

 

 

라자냐와 리조또를 시켜 단숨에 먹어치웠다.

가격 대비 맛도 너무 괜찮다.

또 다시 '성공!'을 외치며

기분 좋게 다시 순례를 이어간다.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한참 걷는데,

P씨가 저길 보라며 손가락으로 어딘갈 가리킨다.

우와, 양떼와 양치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들도 메에에~소리와 함께 북실한 털을 자랑하며

잠깐이나마 까미노 위에 올랐나보다.

양떼가 귀여워 한참을 서서 구경한다.

 

 

발에 모터를 달아 시속 6km가 넘는 속도로

많은 순례자들을 지나쳐 간다.

역시 오늘도, 지루한 아스팔트 길이다.

거짓을 요만큼도 담지 않고,

길이 어떻든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드디어 El Burgo Ranero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그러나 알베르게까지는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

가는 길에 로컬스러운 레스토랑이 보인다.

이따 꼭 와서 먹자며 찜!해두고는

La Laguna 알베르게에 들어선다.

 

큼직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때, 알베르게 직원이 주체할 수 없는 흥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우릴 맞아준다.

다인실이 있고, 3인실이 있단다.

우리는 고민 끝에 3인실을 택했다.

다인실에 묵으면 분명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것이므로.

 

알베르게에 배낭을 내려놓고,

베드에 몸을 눕히기 무섭게 깊은 낮잠에 빠져든다.

비로소 나도 이제,

씨에스타를 즐길 줄 아는 스페인 사람이 다 되었나?

...는 무슨!

그냥 지치고 피곤한 거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눈을 떠 보니,

P씨는 정원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분과

즐거운 수다 타임을 보내고 있다. (feat. 병맥주)

 

우리는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아까 마을 입구에서 찜 해두었던 로컬 레스토랑으로 간다.

최대한 로컬스러운 음식들로 주문하였다.

 

 

 

맛은 괜찮았는데,

양이 진심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나만)

그렇다, P씨는 배가 부르단다.ㅠ^ㅠ

 

결국 숙소로 돌아와

P씨가 나를 위해 라면을 끓여 준다.

 

 

 

라면 한개를 먹어 치우고 나서야

나의 식사는 끝이 났다.

 

둘만의 까미노에는 분명 장점과 단점 모두 있을 거다.

이 마을에 와서 느낀 건,

확실히 술파티가 줄고,

더불어 순례자들과의 소통이 줄었다는 점.

 

 

그렇지만 P씨와 보내는 시간은

1분 1초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길 위에서 대화와 노래 외에는

달리 할 게 없다.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순례 17일차인 이 시점에서,

까미노의 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까미노가 끝나면 우리도 잠시 안녕해야 하니까.

밀려드는 슬픔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한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시간은 무심하게도 빠르게 흘러간다.